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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카츠>  어느 뱀파이어와 반려자의 이야기.

By 이쥬 (@victorS2_YOI )

뱀파이어AU 

 

 

자정이 지나고 빛이라고는 둥근 달빛만이 존재하는 어두컴컴한 새벽. 길거리에는 키가 크고 은빛 머리를 흩날리며 걸어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계에서 인기 있는 배우로 살고 있는 뱀파이어 '빅토르 니키포르프' 였다. 원래 뱀파이어들은 적정량의 피를 마셔야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동물의 피를 마시거나 간혹가다 인간의 피를 마시며 생존을 해왔다.

 

빅토르 같은 경우는 동물의 피를 마시고 인간의 피는 절대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동물의 피가 다 떨어졌고 심지어 바로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소 일주일은 기다려야 마실 수 있었다. 결국 빅토르는 어쩔 수 없이 길거리로 나와 사람의 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새벽이라 길거리에는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고 빅토르는 점점 힘이 빠져 걷는 것이 힘들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고 할 때, 어디선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빅토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는 평범한 학생인 카츠키 유리 였다. 유리는 발견한 빅토르는 보자마자 유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모습의 빅토르를 본 유리는 너무 놀라고 무서웠기 때문에 도망을 쳤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다.

 

"ㅂ.. ㅐ... 고... 파... 살.. 려.. 줘..."

 

빅토르에게 잡힌 유리는 있는 힘껏 발버둥 치지만 자신을 향해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빅토르의 모습에 결국 포기했다.

 

'아주 조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유리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유리는 빅토르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빅토르는 유리의 팔뚝을 세게 콱 깨물었다.

 

"읏!"

 

순간 빅토르의 두 눈이 새빨갛게 빛나고 두 송곳니가 유리의 살을 파고들어 가느다란 피가 팔을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피를 흡입하자 빅토르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더 격하게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유리는 팔이 저릿해지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참을 흡입하던 빅토르는 팔뚝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고개를 들고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유리의 목덜미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깊숙이 푹 깨물었다.

 

"아악!"

 

그러자 빅토르의 송곳니가 박힌 목덜미에서 새빨간 붉은 핏방울이 고였다. 그리고는 새하얗고 가는 유리의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빅토르는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전부 핥아먹으며 계속해서 유리의 목을 쪽쪽 빨며 피를 흡입하였다. 한 번에 많은 피가 빠져나간 유리는 그만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렸다. 한동안 피를 못 마셨던 빅토르는 원하는 만큼 마시고 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응? 얘는 누구지?"

 

정신을 차린 빅토르는 그제서야 자신이 깨물고 피를 빨고 있던 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리의 팔뚝과 목덜미에는 자신이 깨문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 목덜미의 이빨 자국을 본 빅토르는 입을 멍하니 벌리며 자신이 저지른 일을 회상해 보았다. 일을 저질렀다. 피를 흡입하면서 정신을 놓아버린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계약을 해버린 것이었다. 뱀파이어가 사람의 피를 마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의 목덜미를 깨물어 피를 흡입하는 것 만은 제한되었다. 그것은 뱀파이어가 자신의 반려자를 정할 때 하는 행위였다. 인간계의 단어로는 '결혼'과도 같은 것이었다.

 

빅토르는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기절한 유리를 흔들어 깨웠지만 도무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현재 시각은 새벽 2시였다. 결국 빅토르는 자신의 집으로 유리를 데려가 침대에 눕혔다. 보통 뱀파이어는 자신의 관 속에 누워 잠들지만 인간계에 오래 머무른 빅토르에겐 그저 장식품일 뿐이었다. 유리는 어느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늦기도 했고 한 번에 많은 피가 빠져나갔으니 잠이 올 법도 했다. 빅토르는 자신의 침대에서 잠든 유리를 보고 피식 웃으며 방문을 닫고 거실로 향했다. 뱀파이어라면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빅토르는 오랜 인간계 생활로 인해 생활패턴이 뒤바뀌어있었다. 그러나 오늘같이 배부르게 피를 마신 빅토르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낮 보다 더 생생했다. 그렇지만 낮에 영화 촬영이 잡힌 빅토르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 몸을 누워 잠을 청했다.

 

*

 

".....?"

 

카츠키 유리가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그날 오후 1시였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곳에서 눈을 뜬 유리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꽤 넓어 보이는 방 안에는 사람 한 명 정도 들어갈 크기의 관 하나와 자신이 누워있던 침대만이 있었다. 그리고 방 안의 벽지와 바닥은 온통 하얀색으로 덮여 있었다.

 

"여기... 정신병원인가?"

 

"정신병원이라니! 조금 너무하지 않아?"

 

"...?!"

 

눈을 끔뻑이며 방을 둘러보다 의문의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란 유리는 고개를 획획 저으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방에는 유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유리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누울 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박쥐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유리의 앞에 섰다.

 

"정신 병원이라니? 이래 봬도 유명한 인테리어가 한 거라고?"

 

박쥐는 다름 아닌 빅토르였다. 뱀파이어의 능력 중 하나인 변신 능력은 어떤 생물이든지 크기도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었다. 빅토르는 맘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기껏 기절해진 사람을 데려와 침대에서 자게 해 줬더니 정신병원이라니, 우리 집이야"

 

 

“집...? 아앗! 당신은 빅토르 니키포르프...?!”

 

"응, 내 이름은 빅토르 니키포르프. 그리고 여긴 우리 집이야. 기억 안 나는 거야?"

 

유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빅토르를 보며 새벽에 있었던 일을 천천히 떠올렸다. 분명 새벽에 자신은 연습실에서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어둑어둑한 길을 지날 때쯤 한 남자가 배고프다고 살려달라며 자신을 붙잡고 팔뚝과 목덜미를 깨물어 피를 빨아먹은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주위도 어두웠고 그 사람이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 설마.. 그 사람이..?"

 

"응, 나야.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고 뱀파이어이지만?"

 

“빅토르 씨...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대뜸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소개하는 빅토르를 보고 유리는 알 수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세상에 뱀파이어라는 생물이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좀 어딘가 아픈 것 인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얼핏 빅토르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의 피부는 죽은 사람 마냥 새하얗고 입술은 좀 붉은 편이었다. 또 눈동자 색은 살짝 붉은빛을 도는 연갈색이었고 송곳니는 사람의 송곳니보다 조금 더 길고 뾰족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금방이라도 홀릴 법 듯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빼어난 외모였다. 빅토르는 연예계에서도 레전드 급 외모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평소에 빅토르 니키포르프를 동경하던 카츠키 유리도 마찬가지 그에게 홀릴뻔했다. 그러나 정신을 꽉 붙잡고 빅토르의 두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당신이 뱀파이어라면, 나, 나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빅토르는 카츠키 유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떼었다. 그리고 뱀파이어와 사람의 관계, 그리고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빅토르의 이야기를 다 들은 카츠기 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동공이 크게 떨렸다. 그러나 자신의 목덜미를 만져본 유리는 2개의 작은 상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뱀파이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믿을 수 없는데 결혼이라니,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빅토르는 크게 떨고 있는 유리에게 다가가 그의 양쪽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믿을 수 없게지만 전부 다 사실이야. 물론 내 잘못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그렇지만 저는 남자인데..!"

 

"아직까지는 전래에 없지만 여자가 아닌 남자도 반려자로 맞이할 수 있다고 들었어"

 

그 말을 들은 유리는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으며 망연자실했다. 아직 자신의 나이는 한창 젊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았다. 사실 유리는 배우를 꿈꾸는 연습생이었다. 데뷔를 꿈 꾸며 하루 종일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오디션 보고 언젠가는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푼 대가로 뱀파이어와의 결혼이라니. 순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 만 같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다. 유리는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것을 본 빅토르는 살짝 당황하며 유리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저, 저기 우는 건 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데..."

 

"이제 망했어... 내 인생 어떡할 거예요.. 책임져요..!!"

 

"책임이라..."

 

빅토르는 유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책임져줄게. 네가 나의 반려자가 되어준다면 난 너의 꿈을 이뤄줄게-!"

 

"...!?"

 

데뷔도 안한 연습생인 유리에게 빅토르의 제안은 꽤나 솔깃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인 빅토르가 단 한 명의 연습생을 톱스타로 끌어올리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서포트 해주면 그만이었다. 물론 말이 많겠지만 그건 유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그리고 빅토르의 반려자라니. 빅토르를 동경하며 배우의 꿈을 꾸고 있던 유리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유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빅토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방금 한 말은 꼭 지켜야 해요?"

 

"물론이지. 뱀파이어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빅토르의 반려자가 된 유리였다. 뭐 반려자라고 해도 딱히 하는 건 없고 명목상이었다. 다만 반려자는 뱀파이어가 피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피를 내주어야 했고 얼마큼 마시던지 상관없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적정량을 넘어버리면 그대로 과다출혈로 사망할 수 있었지만 반려자는 그러지 않았다. 유리는 빅토르의 서포트로 무사히 데뷔를 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연기력 논란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유리의 수려한 외모와 그동안 갈고닦은 연습 실력 덕분에 연기력도 높게 평가되었다. 빅토르와 견줄 실력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숨에 신인스타로 떠올라 조금씩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빅토르와 같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빅토르의 능력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었지만.

 

 

 

"좋아, 컷-!"

 

"수고하셨습니다-!"

 

"유리 씨, 오늘 연기도 무척 좋았어요. 대체 왜 이런 인재를 이제서야 발견했나 몰라? 역시 빅토르 니키포르프씨가 추천한 인재야-!"

 

"하하하-! 감독님, 제가 분명 말씀드렸죠? 이 역할을 할만한 사람은 유리밖에 없다니까요?"

 

"그러게 말이야. 역시 자네 안목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하하하-!"

 

 

 

이번 기회로 인해 빅토르와 유리는 사이도 꽤 좋아지고 명목상 뱀파이어와 반려자가 아닌 연예계 선후배, 혹은 조금 더 친한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유리는 빅토르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빅토르는 반려자가 생긴 이상 동물의 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려자인 유리는 빅토르가 피를 필요로 할 때 피를 내주어야 했었고 그때마다 유리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리가 처음에 피를 내줄 때에는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거부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피를 흡입하는 빅토르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눈빛이 섹시했기 때문에 결국 내주는 유리였다.

원래 혼자 살던 유리는 원래 살던 집을 빼고 짐을 전부 빅토르의 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동거할 생각이 없었지만 빅토르가 유리의 피를 계속 마셔야 한다는 이유였다. 유리는 당연히 각방을 원했지만 빅토르가 자신은 혼자 자기 싫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같은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평소에는 빅토르와 함께 출근을 하다가 각자가 쉬는 날이 있으면 근처에 산책을 나가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유리는 꽤 요리를 잘 했기 때문에 빅토르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뱀파이어는 인간의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었지만 맛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빅토르는 유리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가끔은 자신들이 찍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서로 모니터링해주기도 했고 투닥거리면서 다투기도 했었다. 그렇게 빅토르와 한 집에서 동고동락을 하게 된 유리였다. 빅토르의 집에서 보내면서 유리는 점차 빅토르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빅토르에게 직접적으로 고백은 하지 않았다. 말을 하게 되면 정말로 빅토르에게 사로잡혀 버릴까 봐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빅토르가 며칠 동안 다른 지역으로 촬영을 가게 되었다.

 

"유리, 나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지?"

 

"빅토르도 참... 내가 무슨 애인 가요?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와요"

 

"응, 잘 다녀오세요의 키스는 없는 걸까나-?"

 

"키, 키스라뇨..! 갔다 오면 생각해볼게요..."

 

얼굴을 붉히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유리의 태도에 빅토르는 시무룩 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활짝 웃으면서 유리에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유리도 같이 손을 흔들어주며 빅토르를 보냈고 자신도 출근 준비를 하러 들어갔다. 한창 준비를 하던 유리의 핸드폰에서 알림이 울리더니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리 씨, 오늘 타국 촬영인데 기억하고 있지?]

 

"아... 깜빡하고 있었네. 빅토르한테는 못 말했는데 괜찮겠지?"

 

그렇게 유리는 그대로 휴대전화를 덮고 나가버렸다.

 

*

 

3일 연속 강행되는 촬영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빅토르는 얼른 마치고 돌아가서 유리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 빅토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촬영에 임했다.

 

"좋아-! 컷!"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빅토르 씨도 수고했어요! 바로 퇴근인가?"

 

"네, 바로 돌아가야죠. 하하-"

 

"뭐야~ 집에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는 거야?"

 

"애인... 글쎄요?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빅토르는 매니저를 불러 곧장 차에 올라타며 바로 출발했다. 촬영지가 산골이라서 그런지 높은 오르막길을 빙글빙글 내려가야 했었다. 도로는 제대로 포장되어 있지 않았고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았다. 그리고 핸들을 조금이라도 잘못 돌리면 바로 낭떠러지형이었다. 빅토르는 금방이라도 변신 능력을 쓰고 싶었지만 눈앞의 매니저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계속 휴대전화를 보면서 초초하게 발을 구르고 있던 그 순간 갑자기 빅토르는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끼이익-!'

 

'쾅-!'

 

*

 

'쨍그랑-!'

 

"앗, 아파라..."

 

"유리 씨, 괜찮아? 어디 다친 거야?"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한창 촬영을 하다가 쉬고 있던 유리는 책상에 놓여 있던 유리잔이 깨져 살짝 피를 보였다. 꽤 깊게 베인 듯 보였다. 빅토르에게 아무 말 없이 다른 나라 촬영을 온 유리는 빅토르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는 뱀파이어였기 때문에 한시름 걱정을 놓았다.

 

*

 

한편 빅토르가 타고 있던 차는 앞에서 달려오던 화물차와 크게 부딪쳐 가드레일을 박고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뒤늦게 내려오던 촬영팀들이 그것을 발견하고 119를 불렀고 빅토르는 바로 응급실로 실려갔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고 차도 몇 번 굴렀는지라 빅토르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출혈이 꽤 심했다. 아무리 뱀파이어라지만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릴 경우에는 생명에 위험이 올 수 있었다. 빅토르를 살리기 위해서는 유리가 있어야만 했다. 유리의 피를 빅토르에게 흡수시켜야만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유리는 이미 다른 나라에 촬영을 가 있어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리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빅토르는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빅토르는 죽어가는 내내 유리의 이름만 말했다고 한다. 세상은 빅토르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유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틀 뒤 귀국하고 나서였다. 유리는 빅토르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빅토르... 당신 뱀파이어라면서... 절대 안 죽는다며..."

 

유리는 빅토르의 시신을 앞에 두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죽은 모습의 빅토르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하얀 피부와 은빛 머리카락. 심지어 좋은 향까지 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빅토르의 보호자는 따로 없었기 때문에 유리가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장례식은 따로 치르지 않았다. 혹시나 빅토르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빅토르의 집에 돌아가 빅토르의 관에다 시신을 안치시켰다. 유리는 관을 꼬옥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들었다.

 

“빅토르... 다시 살아날 거죠? 당신은 뱀파이어니까 절대 안 죽는 거죠...? 나 아직 당신한테 좋아한다고 말도 못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잖아요...”

 

*

 

빅토르가 죽고 난 5년 뒤, 유리는 세계적인 배우가 되어 있었다. 드디어 꿈을 이룬 것이었다. 언제까지 빅토르의 죽음에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유리는 관에 안치된 빅토르를 매일같이 관리하며 계속 연기생활을 이어왔다. 혹시나 빅토르가 돌아오면 당당하게 마주 설 수 있도록...

 

“빅토르, 나 내 꿈을 이루었어요. 이제 당신만 돌아오면 모든 것이 완벽할 텐데 말이죠...”

 

관 속의 빅토르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뱀파이어라서 그런지 시체는 썩지도 않았다. 그동안 유리는 뱀파이어에 관련된 서적들을 모두 찾아 읽어 보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찾은 자료에서 뱀파이어는 죽으면 100년 뒤에 다시 살아난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리는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인간이라 죽어도 빅토르는 다시 살아 날 수 있으니까.

 

 

 

 

 

*

 

100년 뒤, 교통사고로 죽었던 빅토르는 다시 되살아났다. 100년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하고 사람들도 건물도 시대도 전부 다 변해있었다. 빅토르는 관 뚜껑을 열고 나와 밖을 바라보다 관 위에 붙여져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빅토르에게...

빅토르, 난 아직도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당신은 뱀파이어잖아요. 이렇게 죽을 순 없어요. 분명 다시 깨어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물론 당신이 깨어날 때쯤이면 난 이미 이 세상에 없겠지만요. 저 빅토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당신이 떠나기 전에 말을 해야 했던 건데 많이 늦은 걸까요?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 있었나 봐요. 너무 보고 싶어요. 매일매일 당신의 관을 닦고 누워있는 당신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버텨왔어요. 그리고 나는 당신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100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인 나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에요. 당신이 살아나서 깨어날 때쯤에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지도 몰라요. 부디 다시 살아난다면 나를 잊고 다른 반려자를 맞이해 주세요. 짧고도 긴 시간이었지만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대의 하나뿐인 반려자인 카츠키 유리로부터.」

 

“유리... 미안해...”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유리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살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것은 금기었기 때문에 아무리 뱀파이어인 빅토르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유리는 빅토르 보고 다른 반려자를 맞이하라고 했지만 빅토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직 유리만이 그의 반려자였고 다른 사람은 맞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때만큼 빅토르는 자신의 영생을 한탄했다. 뱀파이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은탄으로 맞거나 은 검으로 뱀파이어들의 심장을 찌르는 것이었다. 빅토르는 자신의 방 책상 서랍에 보관해둔 은 단도를 가져왔다.

 

“유리, 나는 너 이외의 반려자를 맞이할 수 없어. 그러니 너를 따라가겠어. 부디 나를 용서해주렴”

 

그리고 빅토르는 은 단도로 자신의 심장을 푹 찔렀다. 그러자 많은 피가 흐르고 빅토르는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은 단도로 찌른 후 빅토르의 몸은 서서히 타들어가 공기중으로 사라졌다. 육체가 소멸하는 것이었다. 빅토르는 카츠키 유리라는 단 한사람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까지 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버린 죄책감과 미안함이 섞여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었다.

 

“유리, 우리 저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 조금만 기다려줘”

 

.

.

.

 

-The End-

DESIGNED BY. ALLO  ( @invernogiallo )   < YURI ON ICE,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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