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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빅토>  Halloween.  By 포프양 (@fopp_yan_BSD )

* 사망 소재

* 인간 카츠키 유리 X 귀신 빅토르 니키포르프

할로윈..

죽은 영혼은 다시 살아나며 정령이니 마녀니 하는 이들이 출몰한다는 단 하루. 신기루 같은 밤. 대체적으로 떠들썩한 날이었다. 세계적으로 즐기는 행사가 요란하지 않다는 것도 또 이상할까. 카츠키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곤 했다. 아니, 편승하다 못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지. 몇 년 전까지는. 은퇴한 선수들끼리 모여 먹고 마시고, 밀린 담소를 나누고. 그런, 요란스럽던 날이 분명 그에게도 있었다.

 

‘지금은 메일로 안부만 묻는 정도지만.’

 

카츠키가 철푸덕 침대 위로 쓰러졌다. 함께 하던 그들이 모처럼의 기념일을 이제와 적당하게 넘기는 이유는, 저 때문이었다. 그 말 없는 배려에 쓴웃음이 비죽 배어나왔다. 죽은 영혼이 살아난다는 날.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마법 같은 믿음. 실재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그저 축제를 축제답게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러나 언젠가는. 정말로 언젠가는, 카츠키도 바보 같은 생각을 놓지 못한 적이 있었다. 아. 당신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니, 살아있는 채가 아니어도 좋다. 바라건대 부디 그 형태만이라도 보여주기를. 염원하는 그조차 허황된 꿈일 뿐이라는 사실 따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볼썽사나운 기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루라도 좋으니, 일 분 일 초라도 당신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그러나 시계 바늘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고, 그 어느 해, 그 어느 순간에조차 당신을 마주한 적이 없다. 심지어 환영조차도. 환청은 종종 귀 기울이라 저를 종용하는데, 야속한 당신은 모습 한 점 비춰주지를 않았다. 한 해가 흐르고, 또 다시 한 해, 또 다시 그 다음의 할로윈. 기대하다가 지치고, 또다시 헛된 기대를 품었다가 지치고. 미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신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납득하면서도 실낱같은 간절함을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카츠키는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거기는 어떤가요, 빅토르. 평안하신가요?’

 

나는, 행복하지 못해요. 우물거리며 카츠키가 침대보를 꽉 부여잡았다. 갈 길 없는 원망이 차마 당신에게 닿을까 무섭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 그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디지털시계는 계속해서 그 숫자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카츠키가 숫자에 시선을 고정하곤 함께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57초, 58초, 59초, 그리고,

 

오전 0시.

 

오늘도 어김없이 새로운 할로윈이 찾아왔다. 해피 할로윈, 빅토르. 당신이 없는 10번째 할로윈이야. 그가 입술새로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손가락에 자리한 반지가 너무도 시렵게 다가와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만날 수 없음을 아는 기다림은 일 분 일 초도 아깝다는 듯 그를 좀먹어갔다. 사실은 원망스러웠다. 사무친 원망이 심장을 난도질해댔다. 너덜거리는 그것들을 가까스로 부여잡은 채, 마르지 않는 눈물로 당신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해왔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마저도 죽지 못해 살아간다. 당신은 왜 그리 일찍 떠났나. 왜 그리 멀리 떠났나. 왜 그리 먼저 떠났나. 왜 그리, 왜 그리…. 아, 당신은 남겨진 날 걱정하기는 했었나.

 

‘나는 유우리의 노년의 모습까지, 전부 다 지켜보고 싶어.’

 

그 말은 정녕 거짓이었던가. 무릎 위에 고갤 비비며 상냥하게 웃어보이던 당신은 어딜 갔는지. 카츠키는 실로 과거에 잠겨 질식하고만 싶었다. 사랑해, 유리. 행복해야해, 내 사랑. 아, 그 말만 아니었으면. 그, 말만, 아니었더라면. 연인의 사랑은 빛 한 점 바래지 않고 언제나 저를 숨 막히게 했다. 원망하고 싶지 않은데도 괜히 투정을 부리게 만들었다. 후회하면서도, 가슴에 돌 얹어지듯 죄책감만 쌓여가면서도, 차마 당신과의 나날을 잊고 싶지가 않았다. 단 한 순간도. 당신과 처음 만났던 날부터, 당신과의 마지막까지. 그 모든 기억을 품에 끌어안은 채 그 무엇에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어요. 빅토르….”

 

“Trick or Treat!”

 

당황한 카츠키가 벌떡 일어났다. 열심히 주위를 살피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도. 또 환청인가…. 풀이 죽은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환청 따위가 아니어야만 했다. 그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발, 빅토르, 제발.

 

“입술에 상처 나, 유리.”

 

아. 그의 앞에는, 카츠키의 앞엔, 그가. 빅토르가. 당신이 왔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낯이며, 입술에 닿는 그의 검지. 비록 닿았다는 감각은 없지만, 그래서 더 서글퍼지지만, 당신이 눈앞에 있다. 저 먼 어느 곳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는 모르지만, 잊지 않고 찾아와줬다. 당신이. 비록 불투명한 모습이지만, 그 외엔 한 점 달라진 곳 없이. 그 사랑스런 웃음조차 꼭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카츠키의 눈에서 점점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신이 실재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가 급히 소매로 문질렀다. 아, 안 돼. 당신이, 빅토르가 여기 있는데. 자세히 봐야 하는데. 당신이 사라지기 전에. 당신이 흩어져버리기 전에. 이 녹아버릴 듯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이건 꿈인가요?”

“글쎄. 꿈일까?”

 

카츠키는 나붓이 고개를 갸웃이는 빅토르가 그저 좋았다. 사르르 흘러내리는 그의 반짝거리는 은발도, 녹음이 가득한 그 눈동자도. 가장 좋아한 건 물론 빙상 위에서 자유롭게 춤추던 그였지만. 더는 그러지 못해도 좋았다. 비록 그가 가장 화려하게 빛나던 순간은 한철 꽃과도 같이 지나버렸지만, 지금도, 보라. 사람을 매료하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아름다움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신이 빅토르 니키포르프가 아니게 된 것은 아니었으니까. 좋아해. 좋아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빅토르. 흘러넘치는 이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할로윈의 신기루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 잊고, 이 순간을 즐길래요. 그러고 싶어요. 많은 걸 바라진 않을게요. 무리한 걸 요구하지 않을게요. 그러다 당신이 곤란해 하며 떠나가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까요.’

 

콩, 빅토르가 카츠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부딪치는 제스쳐를 취했다. 훅 가까워진 그가 눈을 맞춰왔다. 시린 녹음이 다정하게 그를 불렀다. 카츠키는 문득 과거, 그러니까 빅토르가 살아있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괜찮다는 듯 상냥하게 카츠키를 비춰오는 그의 눈동자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게 너무 기뻐서, 너무도 행복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뱃속에 행복이라는 고동은 대체 어느 틈에 똬리를 튼 것일까.

 

“무슨 생각하고 있어? 유리.”

“당신 생각이요.”

“난 여기 있는 걸?”

 

“그러게요. 여기, 있네요. 빅토르.”

 

카츠키는 이제 뭉클거리는 심정을 차마 다 억죌 수 없었다. 그저 행복했다. 아, 정말, 죽어도 좋아.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곁에 있다면, 난 모든 걸 내어줄 수 있는데.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데. 빅토르, 빅토르. 그럼 당신이 슬퍼할까요. 침대 위에서를 제외하곤 당신 눈에 물기가 어리는 것은 싫은데. 그럼 참아야하는 걸까요.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흰 머리 많다, 유우리.”

 

어느새 카츠키의 품에 파고든 빅토르가 그의 머리칼 위로 손을 올렸다. 비록 만질 순 없지만, 그런 흉내를 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듯 웃어보였다. 신중한 얼굴로 그는 함께 하지 못한 세월이 가득 피어오른 새치들, 이마에서부터 눈가, 그 아래의 주름들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덧그리는 빅토르에 카츠키는 눈가가 다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고운 얼굴. 여전히, 빅토르는 그의 마지막 사진에서부터 한 점 나이 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시간을 빗겨가지 못한 저와의 차이가 너무도 두드러져서, 손 뻗으면 그가 있는데도 그 사이로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쳐 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는데, 정말 그것만을 바랐는데, 그를 마주하고 나니 더 많은 것들을 욕심내고 싶어졌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이런 모습이라 미안해, 라며 결국 그마저 왕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빅토르. 그런 당신조차 좋은 걸요. 카츠키가 속삭이며 웃어보였다. 울음새가 튀어나갈까 파들거리는 입매를 가까스로 위로 끌어당겼다. 지금 당신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신께 감사해요. 그의 손바닥에 제 손을 마주대곤 다짐하듯 혀끝에 맴도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래요. 이 이상 욕심내버리면 당신을 더 힘들게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참을게요. 참아볼게요. 와 줘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빅토르.

 

“응. 나도, 사랑해. 유리.”

 

둘은 울며 웃다가, 그런 서로를 바라보며 키득대다 결국 크게 웃어버렸다. 고인 눈물을 훔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설움과 외로움과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도 아깝지 않은가. H-A-P-P-Y HALLOWEEN. 닿지 않는 당신과 재회한 날. 오지 않는 당신과의 추억이 쌓인 날. 다음에 또 만나요.

DESIGNED BY. ALLO  ( @invernogiallo )   < YURI ON ICE, HALLO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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